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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전시평론

Road to me : Horizontal echo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진가인 박지원의 두 번째 전시 ‘Road to me’

일시 : 2016년 11월 24일 - 2016년 12월 15일

장소 : L153 Gallery

작가 : 박지원

박지원의 2015년 개인전 ‘Road to you’의 뒤를 이은 2016 개인전 ‘Road to me’. 작품들은 작업을 하면서 반추하는 그녀 자신을

내보인다.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패션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레스토랑 경영 등의 삶을 지나 사진가로 거듭나고 있다. 다양한 직업과 굴곡진 삶, ‘한 사람 그리고 한 여자의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 학교’에서의 값진, 그러나 톡톡한 대가를 치른 생의 열매들을 사진으로 표현한다.

그녀의 사진은 잔잔하나 격정을 내포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한낱 미물일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자연에 남긴 작은 터치들, 자연에 동화되는 인공적 창조물들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무한대의 수평적 공간 위에 보이지 않는 자신을 위치시킨다. 사진은 그러한 그녀 자신을 보여준다.

작가 박지원의 내공이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드러난다. 캔버스와 물감, 패브릭과 바늘, 음식과 식재료를 통해 그녀의 才와 氣를

지금껏 내보였다면 이제는 카메라와 사진으로 표현된다. 이제는 사진가 박지원으로서의 삶이다.

가물거리는 수평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고요하던 내 안에 생명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다. 생명과 자연 그 어마 어마한 비밀의 속삭임이 에코로 울려 퍼지는, 그 무한대의 공간을 나는 시각적으로 사로잡는다. 그것은 구조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무한대의

영원성으로 마치 공기와 같고 고요 속에 에너지를 창출한다. 나는 이러한 수평적 시각이 불러 일으키는 예기치 않는 순간과

상상을, 한 차원 속에 표현하고자 한다. 결국 일련의 모든 작업은 태초의 나의 탄생과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나에게로 가는 길이다

그 바다는 못생겼다. 텅 비어 오직 허전함으로 가득 찬 바다. 왕성함을 버리고, 모든 의욕이 그야말로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마음의 차가운 풍경이다. 가끔 서있는 고독한 사람의 실루엣은 이 맛없는 수평적 구도에 긴장과 스토리를 불러일으킨다. 수평선과 지평선은 여기와 저기의 차원을 갈등 없이 화해시킨다. 그것은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여기로 무언가가 도래할 것이라는, 아니면 언젠가 거기로 내가 도달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단절선이다.

수평선은 그 너머를 동경하는 시선에게 척박한 이 현실을 잊게 해줄 위로를 건네주지만, 수직선은 그것을 직면하는 시선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것은 갈등의 시작이며, 투쟁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엄중한 신호가 된다. 그것은 수평선처럼 물과 땅의 넉넉함을 품고 있지 못하며, 하늘과 인간의 대립성과 함께 극복해야할 높고 낮은 것들의 계급관계를 공격적으로 각인시켜준다. ‘너머’의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속’과 ‘안’의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협박한다. 수직선은 망막에 상처 입히는 천둥의 번쩍임이며, 위아래로 찢어진 지성소 휘장의 장렬한 최후이다.

박지원은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수평적 시간의 지속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 수평적 인연의 흔적과 기록은 길지만 팽팽한 연(緣)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긴장된 끈처럼 경직되었던 풍경은 이제 안정적 구도의 관조적 시선 속에서 조그마한 반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비어있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들. 여전히 그의 시선은 화려하고 풍성하고 완전한 세계를 향해 있지 않다. 소외된 곳, 상처받은 땅,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할 광활한 모퉁이, 그렇게 넓은 데도 우리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황폐한 공간을 그는 용감하게 바라보려 한다.

무위와 유위, 그대로의 자연과 인공적인 흔적의 마주침은 새로운 경계선을 남기며, 진실 된 현존의 모습을 조용히 그려낸다. 재즈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검소한 피아노 솔로곡 <I Loves You Porgy>처럼 박지원은 그 풍경을, 그 시간을 쓸쓸하지만 작은 빛으로 어루만진다. 화면의 수평적 메아리 속에서, 그 동병상린의 기억 속에서 우리 마음의 상처와 불완전한 삶의 흠집은 가만가만 흔들리며 지워진다.

수평의 흔들림 / 이건수 미술비평가, 전시기획자

울퉁불퉁한 돌산을 넘어온 그녀. 세찬 빗줄기를 피해가지 못했고 질퍽한 진흙길을 돌아가지도 못했다. 바보처럼 그 자리에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았고, 힘에 겨워 속수무책 넘어지기도 했다. 잃은 것이 더 많아 보였던 그녀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질 즈음, 마지막 남은 강력한

무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자신이었다. 자신과 동맹을 맺기로 했다. 자신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자신을 지탱해준 ‘본능적인 감각들’에 손을

내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진’이라는 믿음직한 표현 도구를 찾아냈다.

적막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눈길이 간다. 낡은 담벼락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새털구름과 억새풀, 빗물이 고인 돌바닥과 벌레 먹은 잎사귀, 앙상한 나뭇가지와 코발트 빛 하늘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갯벌에 드리워진 물결 자국도, 갈매기의 애처로운 날갯짓 하나도, 벤치에 앉은 노부부의 뒷모습도, 벌판과 산등성과 숲과 황무지 모두도 그녀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다. 소소한 일상은 소중한 순간이 되고, 하찮게 여겼던 대상들이 하염없이 진지해진다. 거친 날들이 휩쓸고 간 빈자리에 비옥한 싹들이 움트기 시작한다. 이보다 더 근사한 일이 있을까.

그녀의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잿빛 외로움이 되고 때로는 푸르른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길 위에서 마주친 풍경 속에 그녀의 마음이 담긴다. 때로는 자연의 숭고함에 가슴 벅차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생명력에 넋을 잃는다. 수평선과 지평선이 평화의 메아리를 전한다.

바다와 땅과 하늘이 만들어낸 고요한 선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고마움이고 축복이며 행복이다.

그녀는 사진으로 일기를 쓴다. 금세 과거로 떠나버릴 찰나를 카메라 속에 움켜잡는다. 기억만으로는 부족한 눈부신 장면들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하루하루의 흔적들을,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사각 앵글에 담아 자신의 보물 창고를 만든다. 젊은 날에 그림을 그리고 옷을 만들던 그녀가 발견한 자신의 또 다른 거울. 사진은 어느새 든든한 길잡이이자 말동무가 되었다.

그녀의 사진은 따뜻하다. 사색의 틈을 준다. 간결하지만 깊이 있고, 조용하지만 울림이 있다. 타고난 시각적 감각에 순수한 감성이 덮여졌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을 보는 이들은 잠시 생각을 멈추게 된다. 기쁘고 슬프고 찬란하고 적적하기도 한 삶의 조각들, 가슴 한편에 묻어뒀던

자신의 감춰진 모습을 슬그머니 꺼내고 싶어진다.

박지원, 그녀가 보여줄 사진 저편의 세상에 괜스레 뭉클해지는 이유다.

김영주 / 前 마리 클레르, 마담 휘가로 편집장, 現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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