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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Expectation – 예상을 뛰어넘은 예상

일시 : 2013년 12월 18일 – 2014년 1월 8일

장소 :박여숙화랑(02-549-7575,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18-17 네이처 포엠 빌딩 306)

​​작가 : 이승희

무릎 연적이 둥글고 달 항아리도 둥글다. 도자기가 대개 둥그스름한 것이지 다르면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런데 평평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 이승희 작가의 도자 작품은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회화 작품처럼 벽면에 걸린다. 평면 도자판 위에 옛 도자기들이 도톰하게 돋아난다. 역사 교과서에 있을 법한,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만 하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청자, 백자,

청화백자, 분청사기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두께 1센티미터가 형태로 그의 작품 속에서 거듭 난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그린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뭔가 현대적인 소재로 제작한 평면 물체를 특수한 한지에 부착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캔버스처럼 바탕을 이루는 평면 도자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아 흙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므로 까칠한 촉감이다. 조금 도드라지며 매끄럽게 올라온 ‘옛 유물’ 에는 안료와 유약을 발라 반짝이며 빛을 반사한다. 매끄러움과 거침, 돋음과 낮음, 유색과 무색, 빛의 반사와 흡수 등 모든 상반성이 한 판에 담겨 구워져 나온다. 바탕 보다 도드라지게 만들려면 묽은 흙물을 바르고 마르기 또 바르기를 70여 차례는 거듭 해야 한다. 흙으로 네모난 얇은 판을 만드는 작업부터 흙물을 바르고 완성하여 가마에서 최종 작품이 나오기까지 덧칠도 개칠도 불가능하다. 단 한 번의 손길이 무수히 반복 중첩된 결과가 그의 작품이다.

최근에 작가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 봇물 넘치듯 가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오기 까지는 3년이 넘는 연구와 실험이 필요했다. 90%이상을 버려야만 했던 초기 작업 세월이 지난했을 듯하다. “아니요. 재미있었어요. 실험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라며 웃는 그의 얼굴에서 작품에 대한 집념을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흙과 불을 찾아 반백 년을 살던 터전을 뒤에 남겨뒀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중국 최고의 도자기 도시인 장시성(江西省)의 징더전(景德鎭)에 머물며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덩어리 느낌이 나는

오브제 작업도 했고 이미지를 평면으로 만드는 판 작업도 했다. 어느 순간 흙의 한계가 다가왔고 흙에 생각을 담기에는 부족함이 큼을 느꼈다. 3D의 도자기가 2D형태로 제작되는 그만의 작품은 일반인들의 상상과 예상을 뛰어 넘어선다.

그의 전시 <Beyond expectation- 예상을 뛰어넘는 예상>은 12월 18일부터 1월 8일까지 박여숙화랑에서, 그리고 140년 역사의 미국 갤러리 ‘Wally Findlay(www.wallyfindlay.com)에서도 12월, 2014년 1월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평론

삶은 언제나 두 가지 선택을 하라고 한다.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갈 것인가 현재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우리는 강요 아닌 강요와 마주 서있고 언제나 이러한 결정 앞에서 머뭇거린다. 두 갈래 길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가올 수많은 상황에서의 경우의 수가 확정된다. 어느 누가 갈래 길의 ‘옹이’ 앞에서 주춤하고 멈칫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자를 선뜻 택하는 사람들은 솔직히 지독한 사람들이다.

무지(無知)의 허공에 자신의 한 몸을 홀로 온전히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해답과 정답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 채 무조건적으로 전진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겠는가. 어느 정도, 얼마만큼 인지 조차 가늠하지 못할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결국 풀이를 해나가고 정답을 구하는 과정은 누가 뭐라 해도 자신과의 혹독한 전쟁의 기록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나가는 길,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성찰에서 비롯된다. 내적으로 느끼는 부족함, 불만족, 불편, 갈증, 갈망으로 인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고자 한다.

작가 이승희의 경우이다. 현실에 안주한다면 그보다 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30여 년이 넘는 도자 작가 생활 속에서 흙덩이를

매치고 주무르며 덩어리 작업도 했고 평평하게 펼치는 판 작업도 했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쳤다.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가 없다는 점, 그리고 대중과의 소통 ‘언어’가 없다는 점이 그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구하게 했다. 현재에 이르게 한 창작의 원천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구도자처럼 해답을 얻기 위해 중국최고(最古)의 도자기 도시인 장시성(江西省)의 징더전(景德鎭)에 무조건 들어서서 작가가 구한 것은 흙, 불, 물, 빛, 공기, 바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이다. 터럭보다 미세한 정도를 표현할 수 있는 흙이 그곳에 있었다. 한국의 흙은 흙 자체의 문제로 휨이 드러나 미세한 돌출이 감지되는 작품에서 휘어짐이 극대화되므로 완벽한 느낌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5밀리미터 두께에, 최대 2미터 길이나 되는 판작업을 구워낼 가마와 화력도 부족함을 더했었다. 흙, 불, 물이 갖추어진 천혜의 도자 생산지인 징더전에서의 생활은 무모하리 만치 자신만을 믿고 떠난 작가에게 창조의 길을 차츰 열어주었다.

작가는 박제처럼 박물관에 갇혀 있는 옛 도자기들을 이 시대, 이 시점으로 끌어냈다. 옛 것이 소재가 되나 가장 현대적인 표현 방식으로,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입체로 보이되 평면으로 소화하는 기법을 구했다. 입체를 평면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전개도처럼 펼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미세한 면과 선이 관건인 그의 작품은 재료인 흙이 작품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 속에 매 순간의 면면(面面)과 작가와의 일체를 통해야만 제작될 수 있다. 이는 실험과 체험을 통해서 얻은 수학 공식과 같은 모든 데이터가 체득되어야만 그의 작품 제작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 실험에 꼬박 3년을 바쳤다. 평면적 두께감은 너무 돌출되어 완전한 부조가 되는 것도 아니고 회화성을 충분히 담을 정도로 묽은 흙물을 바르고 마르고 또 바르기를 70여 회를 반복해야 드러난다. 또한 옛 유물의 곡선과 곡면이 주는 입체감은 티끌의 높이보다 낮은 두께로 긁어내고 성형(成形)을 해야 세밀한 차이를 두고 감지된다. 미세한 바람의 흐름과 빛의 반사가 사진도 회화도 조각도 아닌 작가의 평면 도자 작품을 완성시킨다. 그가 이렇게 고전 유물을 세상에 끌어내 재탄생 시킨 것은 비단 형태적 기법에만 초점을 맞추고자 함이 아니다. 시공(時空)을 압축시켜 과거가 현대로 편입하며 철저히 현대성이 부각된 작품으로 탈바꿈하여 재탄생 했음을 주시해야 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대, 작가와 대중 간의 소통을 원한다. 이는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그 무엇을 뜻하지는 않는다. 대중과의 소통은 단순한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특히 주제, 물성, 기법, 색 등에 대한 질문은 작가와 소통하고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시작점이 된다. 이러한 이해도를 넘어 그의 작품을 응시하면 그 속에 스민 깊은 감정이 전해온다. 맑은 흙물이 겹겹이

쌓여지는 동안, 티끌 높이의 결을 조심스럽게 긁어내는 동안, 선과 면을 고르는 동안, 구워진 후 발현할 색상을 예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들어간 노고의 깊이 만큼이다. 노동력의 정도가 반드시 좋은 작품임을 증거하는 것은 아니나 작가의 올곧은 열과 성이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굽기 전과 굽고 난 후의 도자기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부피는 확연히 줄고 안료의 색상이 달리 나타나고 흙의 색상이 차이가 난다. 치밀한 예측과 예상에 의해 완성된 결과물을 전적으로 상상하면서 제작해야 한다. 그 과정에 쏟아 넣은 기운을 감지하면서 작가와 작품과의 진정한 소통이 일어난다.


그의 작품은 상대성의 결합이다. 흙의 진솔한 느낌이 까칠하게 그대로 전달되는 부분과 유약으로 매끄럽게 빛나는 부분, 빛의

흡수와 반사, 차가움과 따뜻함, 무색과 유색, 평면과 입체의 모든 대비는 시각과 촉각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들어온다. 이는 작가의 의도적 예상에서 비롯된다. 직접 작품을 만져 보지 않아도 시각적 경험 치에 견주어 느껴지는 촉감이 작용한다. 감각의 대비가

주는 묘미는 그의 작품의 진정한 맛을 곱씹게 하는 비언어적 소통을 가능케 한다.  

역사 속의 옛 화가와 현대 화가, 완벽한 대칭 입체 구조를 물레로 제작하는 전형적인 도예가와 평면에서 입체 효과를 구현하는 specific한 도예가의 관계 속에서 작가는 통시적, 공시적 개념들을 선택적으로 작품에 투영하며 역사와 입체가 평면으로 녹아 들어 새로운 형태로 창출되는 도예의 새 지평을 개척했다. 치밀하게 계산된, 기계적 수치로는 감지할 수 없는, 오로지 사람의 시각과 촉각에 의해서만 형성되고 느껴지는 그의 작품 속에는 예상하지 못하는 예상이 숨어 있다.

 

L153 Art Company 대표 이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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